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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최형우 부인 이혼 연봉 타율 FA 100억 재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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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아(전 삼성)의 야구 선수인 최형우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유퉁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최형우 선수.. 얼핏보면 비슷하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최형우 선수는 처음 데뷔부터 주목을 받은 선수는 아니에요. 호남지방인 전북 전주 1984년에 태어나 진북초 - 전주동중 - 전주고를 거친 후 2002년 삼성에 지명을 받아 입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의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타격은 좋았지만 수비 불안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기에 5천만원의 계약금 밖에 받지 못한 채로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이 후 4년 동안 대타, 대수비로만 출장했고 2군에서도 활약하지 못한 그는 결국 삼성에서 방출 후 상무 입대도 탈락.. 연속해서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되죠. 하지만 경찰청 야구단에 입단하게 된 최형우는 장점인 타격은 살리고 단점인 수비부담을 줄이기 위해 포지션을 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고, 타격에 눈을 뜬 후 보란듯이 다시 삼성에 입단합니다.

물론 외야수로 전향한 후에도 초기에는 포지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수비에는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극강의 타격 실력으로 본인의 주전 자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2008~2010년까지 점점 기량을 끌어올린 최형우는 2011년 커리어하이를 기록합니다. (3할 30홈런 100타점)

이때를 기점으로 삼성 라이온즈 자체가 점차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후 이승엽 선수의 복귀와 함께 삼성 왕조가 완성됩니다. 이 기간동안 최형우 선수의 활약은 뛰어났으나 압도적인 뛰어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강타자가 많았던 삼성에서 최형우가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됩니다.

이후 FA 로이드가 찾아온 2016년 최형우 선수는 다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3할7푼6리의 타율과 31홈런 195안타 144타점이라는 기록을 보여주었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KBO 역사상 최초로 FA 100억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KIA로 이적하게 됩니다.

FA의 금전적인 부분과 함께 은퇴를 고려해 고향팀으로 이적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에 삼성팬들의 환호를 받지 못했고 소외감을 느꼈다와 같은 실언을 하며 삼성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이런 아름답지 못한 이별 때문인지 최형우 100억은 과대평가다, 거품이다 등등의 말이 많았지만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거포가 필요했던 기아에 딱 맞는 선수로 자리 잡으면서 2017시즌 3할4푼2리 26홈런 120타점과 함께 팀의 우승을 가져옵니다. 

당시 기아팬들에게 최형우는 100억도 아깝지 않은 선수, 1년만에 100억의 가치를 했다 등등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이 후 시즌에도 첫 해보다는 낮은 기록이지만 물방망이 타선 속에서 유일하게 꾸준한 선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 기아팬들은 최형우 선수를 보며 '이맛현'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이 맛에 현질한다.)

FA 마지막 시즌인 2020년에는 다시 한번 타율 1위(3할5푼4리) 185안타 115타점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최형우 선수가 쓸때없는 고집만 부리지 않는다면 두번째 FA 또한 적정한 선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살 더 많은 이대호 선수가 보인 기록과 최형우 선수를 비교한다면 어떤 선수가 더 FA가 무난할 것인지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어보입니다.

최형우 선수는 2012년 결혼했습니다. 당시 현역 모델로 활동하던 아내 박향미 씨와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최형우는 재혼하였지만 정확한 시기나 부인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KIA로 이적할 시기 쯤 재혼했다고 시기에 대한 짐작만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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