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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황선홍 선수 경력 등번호 부상 군대 별명 급류차기 가족 아들 딸(황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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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홍 선수의 경력과 등번호

황선홍 선수는 1968년 7월 14일 생으로 충정남도 예산군 출신입니다. 키 183cm의 훨칠한 신장과 80kg의 탄탄한 피지컬로 최전방에서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는 전형적인 타켓형 스트라이커 입니다.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90년대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우리나라 축구를 이끌어간 공격수로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 많은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프로 축구에서 14년에 가까운 시기(21살부터 35살까지)를 주전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황선홍 선수의 논스톱 슛은 한국을 월드컵 16강으로 이끈 축구 기록 중 하나입니다. 

많은 축구 팬들이 2002월드컵에서 안정환 선수를 기억합니다. 안정환 선수도 뛰어난 활약을 많이 남긴 것이 사실이지만 주전 공격수는 황선홍 선수였다는 사실을 본다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황선홍 선수는 세로소 오사카(1998~2000) 소속으로 있을 당시 1999년 26골의 골을 넣어 해외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황선홍 등번호였던 18번은 우리나라에 최고의 공격수를 뜻하는 등번호가 되었습니다.

 

◎ 황선홍 선수의 부상과 군대

황선홍 선수는 선수 시절 두 차례의 전방 십자인대 파열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군대를 면제 받았습니다. 십자 인대 파열이 없었다 하더라도 요즘 시대의 선수였다면 실력으로 충분히 군 면제를 이뤄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선수 생활로 전성기를 찍어가던 25살때 독일에서 십자인대 파열을 격고 군대 면제가 되었으며 이 후 부상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94월드컵에 나가 엄청난 욕받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후 98년 월드컵 직전 또 한번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 황선홍 선수의 별명

황선홍 선수는 황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황씨 성을 가졌고 새처럼 훨훨 날아다니니깐 황새라는 별명이 붙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어린 시절 물로 배를 채우고 배가 나와 뛰어다니는 모습이 황새를 닮았다고 붙여진 별명이라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 황선홍 선수의 급류차기(?)

황선홍 선수시절 설악산 계곡에서 계곡물을 발로차고 나무에 몸을 부딪히며 몸싸움 연습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이는 모두 언론과 기자가 갑이었던 시절 신문사의 요구에 의해 설정한 모습을 찍은 것으로 훗 날 알려졌습니다.

 

◎ 황선홍 선수의 가족

황선홍 선수는 2남 1녀를 두었습니다. 첫째인 장녀 황현진 양은 '이겨'라는 이름으로 걸그룹 예아(Ye-A)로 데뷔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이 후 소속사 문제로 해체하였습니다. 둘째이자 장님인 황재훈 군은 황선홍 선수를 따라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똑같은 십자인대 파열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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